오늘 오전 11시 The Queen's Hall, Edinburgh에서 열리는 조성진 공연을 보러 갔다. 월요일 오전 11시에 피아노 공연이 되겠나 싶지만, 내가 예매할 무렵 가장 저렴한 위치 위주로 표가 남아 있었다. 지금 Edinburgh International Festival이 한창이라 평일 오전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다.
가격에 비해 자리가 나쁜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앞 열에서 머리로 조성진을 딱 가린다. 공연 초반에 좌석에 앉아 듣다가, 조상진의 연주 모습을 보려고 휴식 시간 이후 후반에는 뒤에서 서서 들었다. 와이어가 거슬리지만, 연주 모습이 확실히 잘 보였다. 45분을 서서 들었는데 연주를 듣느라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한국인 관람객이 꽤 많았고, 여기서 아버딘에서 박사 과정 중인 A 형님 가족과 센앤 학부 졸업생 커플도 만났다. 공연이 끝나자 엄청난 박수 세례와 환호가 지속되었고, 조성진은 두 차례나 인사를 반복한 후에 앵콜 공연으로 1곡 더 연주해주었다.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지만 조성진 공연 모습과 인사 등 뭐 하나 제대로 찍지 못해 아쉽다.
작년 말인가 올해 초부터인가 CFP(Call For Papers) 공고를 보고 학회 발표 제안서를 열심히 작성해서 지원했다.
채택된 제안서는 총 14개이고, 현재까지 12회 발표를 완료했다. 다음 주 발표로 1회를 채울 예정이고, 남은 1회는 취소할 예정이다. 학회 일정과 비용 등 내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 9월부터는 논문 작성에 집중할 예정이고, 내년 학회 발표를 위한 제안서는 선별적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미채택된 제안서는 총 2개이다. 1개는 제안서 수신 확인 이메일부터 못 받았고, 다른 1개는 발표 제안서는 반려되었으나 respondent 역할을 제안받았다.
최대 10개월 정도 진행하고, 실제 6개월 동안 발표를 진행하면서, 내가 접근할 수 있는 성서학 학회는 웬만큼 다 참여하지 않았나 싶다.
내 기억에 딱 두 곳은 걸렀다. The Annual Conference of the Association for Jewish Studies는 유대학 전공자에게는 좋은 기회였겠으나, 신약학 전공자 입장에서 멤버십과 학회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걸렀다. SBL Annual Meeting는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모임이라 딱히 기대가 없어서, 박사 학위 취득 후 강사 자리를 얻고나서 참여할 예정이다.
반려된 두 사례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 A 학회는 제안서 제출 이메일에 원격 발표(a virtual presentation)를 희망한다고 적시했는데, 단체 규모가 큰 곳에서 주관하는 학회라서 제안서 수준과 현장 참여를 고려해 발표자를 선정하지 않았을까 싶다. 학회 일정을 보니 원격 발표는 매우 적었다. 사실 이 학회 담당자로부터 답장이 없어서 다른 학회에 지원했는데 그건 또 수락되어 발표까지 마쳤다. 그 학회가 특정 주제로 접근하고 발표자가 대부분 현역 교수 요원들이다. 그러니 제안서 수준이 결정적인 미채택 요인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B 학회는 신진 학자를 위한 학회로 박사 과정 학생과 박사 학위 소지자를 대상으로 한다. 작년 발표자 명단을 확인해 보니 대부분 박사 학위 소지자로 현역에서 강사나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고 볼 수 있고, 박사와 박사 과정 학생 사이의 체급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면 주제별 세션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제안서의 적절한 위치를 못 찾았을 가능성도 있다. 분류 과정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가능성도 있겠다.
내가 작성한 제안서 중에서 미채택으로 활용하지 못한 건 1건인데, 내년 학회에 재활용해야겠다.
영국 대학교 박사 과정 비자는 4년이다. full-time 3년과 continuation period 1년을 더하여 4년을 주는 것. 학교는 비자법을 이용해 재정 확보를 위해 학생이 4년을 채우도록 유도하지 않나 싶다. 지도 교수는 학교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학생의 논문 수준이 향상되도록 지도한다고 여겨진다.
난 매년 £18,250을 3년간 지불했고, 이제 1년 연장 비용으로 £365 (한화 64만원)를 지불하면 된다. 학자금 지출로 인한 스트레스는 해소되지만, 재정적 압박은 여전하다.
내 예상과 목표에 비해 학위 취득 시간이 길어졌지만, 논문의 질적 향상은 확실히 이뤄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더 욕심을 부릴 수 없으니, 내 학업 종료 기간인 2025년 8월 26일 전까지 모든 절차를 마치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선한 목자 담론의 배경으로 에스겔서 34장과 예레미야 23장, 스가랴 11장 등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여러 구약 본문 중에서도 에스겔서 34장의 영향을 강조하는 견해가 대세이다. 반면 나는 목자-양 은유와 초막절을 근거로 스가랴서 9-14장이 배경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다. 스가랴서 9-14장이 여러 목자 본문 가운데 선한 목자 담론의 위치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한 목자의 자발적인 죽음은 목자-양 은유 용례에서 설명할 수 없는데, 예수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주장하신다. 목자의 자발적인 죽음이라는 유일무이한 전례는 예수의 아들됨과 하나님의 언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선한 목자의 죽음에 관한 기원을 찾을 수는 없지만, 요한복음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에스겔서 34장이 선한 목자 담론의 배경이라는 주장을 수용하고도, 여전히 목자의 죽음을 예수의 아들됨과 하나님의 언약으로 풀 수 있는 연결점을 찾아냈다. 그간 내가 고려했던 요소이었건만, 에스겔서 34장을 배제한 탓에, 두 본문의 유사성보다 차별성에 더 주목한 탓에 놓치고 있었다.
이로써 선행 연구의 대세를 수용하면서도, 여전히 내 독창성을 견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내 결과물이 극복해야 할 저항선이 낮아짐.
현재 진행 중인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 담론과 관련하여 구약 성경을 분석하는 작업이 꽤 많다. 구약 성경을 읽고 분석할 때 후대 편집의 영향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적지 않지만, 내 관심사와 방법론으로는 현 구약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역사비평 혹은 편집비평은 다루지 않는다.
다만 예언서를 읽을 때 특정 신학의 형성과 발전을 추론하도록 자극하는 지점이 있다. 가령 예언서에 나타난 묵시적 성격이라던가, 다윗 메시아사상의 약화라든가,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 시점에 발화되어 발전될 만한 사상이라던가 기존 이념의 발전 혹은 약화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변화는 분명 예언자의 활동 시대를 반영하거나 후대 편집에 의한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근래에는 본문 형성 시기마다 신학을 정리하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어제 도서관에서 요한복음 주석 중 이런 시도를 한 자료를 보았음.
성경 연구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최종 형태의 신학과 형성 단계별 신학을 분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신학 형성사를 추적할 수 있다.
선한 목자 담론(요 10:1-21)에서 목자-양 유비의 배경으로 에스겔서 34장과 예레미야 23장 등 유대 문헌은 언급되지만, 그리스-로마 문헌은 사료로 제시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분석한 문헌에서도 관련된 바가 전혀 없다. 내가 선행 연구에서 못 찾았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으나, 실제로 그리스-로마 문헌에서 이 같은 용례가 없었을 수 있다.
엄격히 말하면 에스겔서 34장과 예레미야 23장 등 역시 선한 목자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두 본문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목자의 죽음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으며, 목자의 보호를 강조할 뿐이다.
내 분석에 의하면, 고대 근동, 구약 성경, 제2성전기 문헌, 그리스-로마 문헌 등 목자-양 유비는 역사적으로 왕권 사상과 관련이 있다. 즉 목자-양 유비는 왕권의 정당성과 그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백성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통치 수단이다.
선한 목자의 자발적인 죽음은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그의 사역과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관점에서만 이해 가능하다. 이런 강조는 선한 목자 담론에 충분히 내포되어 있다.
로테르담은 블락 역 주변 건물을 추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어젯밤에 다 둘러봐서 아침에 기차 편으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로 이동한다.
사진 1. 로테르담 중앙역
아침 체크인을 마치고 역으로 갔으나 운행이 취소되어 30분 뒤 기차를 탔다. 토요일에 이동하는 승객이 많아 입석 승객이 많았다. 몇 정거장은 비좁게 서서 갔으나 중간에 하차하는 승객이 많아서 얼마간 앉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인트호번 중앙역(Eindhoven Centraal)에서 환승한다. 플릭스 버스(Flix Bus)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 정도 대기 시간이 있어서 주변을 구경할 수 있었으나, 내가 본 글은 대부분 그곳을 피해서 가야겠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환승 대기 시간이 짧은 기차를 이용. 운행 취소로 30분이 날아갔지만, 버스에 비해 이른 시간에 도착했다.
사진 2. 마스트리흐트 역
마스트리흐트는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 내가 희망하는 벨기에 도시로 이동하는 경로가 애매하다. 마스트리흐트에서 루뱅(Leuven)으로 바로 가는 경로는 복잡하다. 브뤼셀(Brussels)은 그나마 낫다. 아예 브뤼허(Bruges)와 헨트(Ghent)를 알아보았다. 이동 시간을 줄여 여행 시간을 확보하려고 새벽 4시 50분에 탑승해서 벨기에 브뤼허(Bruges)로 이동하는 버스를 점찍어 두었다.
미리 알아둔 숙소에 가서 아침 4시에 체크아웃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언제든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숙박 예약 후 짐을 맡겨두고 나왔다. 그 중간에 앱으로 버스 티켓 예약. 오늘은 일찍 숙소로 돌아와서 쉬면서 빨래하고 내일 아침 일찍 체크아웃하려는 일정으로 결정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벨켄부르크(Valkenburg)로 이동했다. 마스트리히트에 방문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옆 동네 벨켄부르크를 들리기 위해서라는 글을 보고 결정한 일정이다.
사진 3. 마스트리흐트 역과 버스 정거장
막상 어디서 내려야 할지 알아 보지 않고 무작정 벨켄부르크 기차역이자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목적지까지 구경 겸 걸어서 이동했다.
사진 4. 벨겐부르크 역과 버스 정거장
사진 5~6. 벨겐부르크 시내
이 도시는 한가롭게 점심 식사하러 오는 곳인가 보다. 사진은 길이 만나는 지점을 찍었는데 골목마다 레스토랑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노상에 자리한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국으로 치면 주말 점심 시간대 먹자골목 느낌이다.
사진 7. 먹자골목(?)
여기 구경거리는 Valkenburg Castle Ruins과 Fluweelengrot (Velvet cave)이다. 아까 식당 가에서 왼쪽으로 가면 바로 올 수 있는데 빙빙 돌았다. 구글 맵이 안내를 제대로 못하 는 느낌이다.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할 계획이 아니라면 바로 이 주변 버스 정류장에 내리는 편이 낫다.
내부를 보지 않고 주변만 봤을 때 딱히 인상적이지 않다.
사진 8~9. Van Meijlandstraat는 Valkenburg Castle Ruins과 Fluweelengrot (Velvet cave) 사이에 위치한 길이다. 오른쪽 건물은 식당 겸 숙박업체이다.
주변에 또 다른 동굴 Gemeentegrot에 이동했다. 마침 입장 시간이 가까워서 관람하기로 했다. 티켓은 트레인 코스(30분)와 보도 코스(1시간)가 있다. 난 보로 코스로 결정했다. 왼쪽 긴 줄이 트레인, 오른쪽 한가한 쪽이 보도.
사진 10~11. Gemeentegrot 외부
전기 전등이 설치된 곳이 있지만 대체로 불이 없다. 가이드는 등 2개를 챙겨서 하나는 본인이, 하나는 관광객 중 한 명에게 맡긴다. 가이드가 네덜란드어를 말하는 듯 거의 못 알아들음. 가이드 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나, 없어도 대충 이해 가능. 고대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거 같기도 한데, 그림과 조각 등은 학생들 작품이 대부분이다. 돌을 잘라내서 건축물에 활용한 모양이다. 작업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더운 날 선선함을 느끼기 딱 좋음. 관광을 위해 개발한 곳으로 보인다. 겨울 크리스마스 시즌에 인기가 좋다고 함.
가장 신기한 건 자연발생인지 구멍이 나서 산에서 지하로 빛이 통하는 곳이 있다는 것.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아쉽다. 그리고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신기하지만 인상적인 곳은 아니다.
사진 12~13. Gemeentegrot 내부
버스를 타고 마스트리흐트로 이동하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었다. 저 조그마한 입구가 먹자골목으로 이어진다.
사진 14. 먹자골목 입구
버스 도착 전 근처 성당 Nicolaasplein에 들어가 본다.
사진 15. Nicolaasplein
마스트리흐트 광장 Vrijthof이다. 여기도 한 줄로 레스토랑마다 사람이 꽊 차 있다.
사진 16~18. Vrijthof
내가 네덜란드 최남단에 위치한 이 지역에 온 이유는 단 하나 성당 건물을 서점으로 사용하는 Book Store Dominicanen에 방문하고 싶어서다.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외부는 딱히 인상 깊지 않은데, 내부가 멋짐.
사진 19~21. Book Store Dominicanen 내부
건물 제일 안쪽에는 커피숍 coffee lovers가 있다. 잠시 쉬며 허기를 달래려고 커피와 머핀을 주문했다. Summer Cappucino를 시키고 얼음을 빼달라고 한 건 뭔지 싶다. 바리스타는 주문대로 만들어줌. 이곳을 추천한 현지인 말로는 이 커피점이 유명한 원두를 사용한다는데 커피 맛이 좋다. 머핀도 맛있다.
사진 22~24. 카페 공간
이제 숙소로 이동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리 하나로 사람이 엄청나게 붐빈다.
사진 25~29. 마스트리흐트 시내
숙소 체크인은 체크인 앤 아웃 단말기로 고객이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접수처는 맥주와 음료를 판매하는 선술집(pub)을 겸하고 있으며, 뒤쪽은 레스토랑이다. 숙소는 별도 건물로 따로 운영된다.
사진 30~32. 숙소 The Green Elephant
복병은 세탁이었는데 일찍 귀가해서 세탁을 맡겼는데 세탁기 1대에 건조기가 없어서 여러 차례 접수처에 가서 세탁과 건조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11시 30분쯤인가 건조기에 들어간 걸 보고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50분 버스를 타려면 일찍 나가야 해서 3시간 남짓 잘든 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는 성당 서점, 벨켄부르크(Valkenburg)는 동굴 혹은 식사하러 가는 곳.
현재 수락된 발표 일정이 두 차례 남아 있다. 하나는 BNTS 2024로 8월 23일(금)에 University of Glasgow에서 "The Death of the Good Shepherd Discourse in John 10 and Its Background"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다른 하나는 CISSR Annual Meeting on Christian Origins로 10월 5일(토)에 University Residential Centre of Bertinoro, Italy에서 "Jewish Davidic Messianism and Jesus’s Kingship and Sonship in John 10"라는 제목으로 발표 일정이 잡혀 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두 번째 발표는 내가 학회에 취소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완료한 일정을 기준으로 올해 발표 횟수는 총 12회이고, 이 모든 일정이 6개월 이내에 이뤄졌다. 매달 최소 2회씩 발표한 셈이고, 7월은 4회나 발표해야 했다. BNTS 2024를 기점으로 현지 발표 일정은 가급적 잡지 않을 예정이다. 반면 온라인 발표는 기회가 닿으면 진행하려고 한다. 학회 발표를 통해 많은 유익이 있었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논문 작성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다.
여전히 영어 발표는 큰 부담이지만, 아직 발음은 유창하지 않아서 청중에게 미안할 때도 있지만, 발표와 질의응답에 충분히 내 몫을 다했다고 자임한다. 그러나 영어 회화는 앞으로도 극복해야 할 산이다.
논문 작업이 진척되고 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학회 발표를 마감 효과로 삼아서 잡념을 없애고 논문 작업을 진척할 수 있었다. 발표 이후 질의응답을 통해 내 논문의 방향성과 보완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미나 참석을 통해서도 적잖이 배운다.
인맥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맥 형성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고, 자연스러운 인연을 선호하는 편인데, 학회 발표 활동을 통해 현역 학자들과 박사 과정 학생들과 안면을 트고 있다. 최근에는 마빈 스위니 박사와 점심 식사를 두 번이나 같이 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학회 활동을 꾸준히 해서 인맥 형성과 그 내실을 다질 필요가 있으며, 더 중요한 건 내 학술 업적을 남겨서 학계 인사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욕심을 더 내보자면 저널 출판은 아직 기회가 닿지 않고 있다. 세미나 원고 요청(Call For Papers) 수락률을 보면, 내 제안서들이 현 학계에서 통용할 만한 주제라는 의미가 내포될 텐데,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담당자들로부터 저널 투고에 관한 제안을 받아보지 못했다. 기회 자체가 없는 건 아닌데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논문 제출 기한이 일 년 남짓 남았는데, 그 이전에 혹은 그 이후라도 저널 투고를 해보고 싶다.
성경의 진의 혹은 본문의 의도에 천착하는 작업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신학도로서 그 외적인 접근을 부수적으로 간주하는 성향이 짙다. 어쩌면 성서학 전공자 중에서도 내가 그 성향이 강할지 모른다.
트라우마는 내가 외적이라고 여기는 최신 경향 중 하나이다. 이번 Colloquium Biblicum Lovaniense 2024에서 언어별 주제 강연이 이틀에 나누어 진행되었고, 나는 "Métaphores et langage figuratif et la cohérence du livre d’Isaïe"("이사야서의 은유와 비유적 언어, 일관성")를 듣고 싶었으나, 해당 주제는 프랑스어로 진행되어 일찍이 포기하고, 영어로 진행되는 "The Book of Isaiah and Trauma/Resilience Studies"에 들어가야 했다.
마빈 스위니 (Marvin Sweeney) 박사와 콘라드 슈미트(Konrad Schmid) 박사도 이 세션에 참석했는데, 현 선지서 학계에서 대세인가 싶었다.
강연을 들으면서 트라우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성경 본문에 트라우마와 관련된 본문을 얼마든지, 특히 선지서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스위니 박사가 말하듯이 성경 저자 혹은 편집자의 관심은 신적 심판의 심각성에 있지 청중의 트라우마에 있지 않다. 나도 그의 견해에 동의한다.
반면 목회 현장에서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강연 후 점심을 스위니 부부와 같은 테이블에서 가졌다. 내 앞에 신경과학(神經科學, neuroscience 또는 뇌신경과학)도 동석했음. 대화 중 스위니 박사가 자신이 트라우마 강연에 참석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그의 수많은 전우가 죽었으나, 자신은 기적적으로 생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전쟁 후유증을 겪어야했다고 말해주었다. 스위니 박사의 가정사를 통해 자신이 트라우마에 관심을 두는 이유와 그럼에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강조되는 이유는 진실로 내 마음에 남았다.
앞으로 신학을 최우선 순위로 삼되, 교회를 위한 실질적인 학문에도 관심을 두고자 한다. 현실은 나 하나 건사하기 쉽지 않은 무지렁이 같은 존재지만, 서로 연약한 존재끼리 현실을 이겨내는 곳이 교회 공동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