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며칠째 "동물묵시록에 등장하는 70 목자의 정체"라는 글을 쓰고 있다. 동물묵시록은 목자-왕 전승과 관련이 있어서 관련 주제는 추후 논문 작업을 위해 신중하게 초안을 쓰고 있다. 특히 70 목자는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솔직히 이 정도로 시간을 투자할 줄은 몰랐.....

현재 내 작업은 '동물묵시록의 70 목자는 천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결론을 내기에 앞서 참고해야 할 자료가 많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극히 소수의 자료를 이용해야 하는 제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 본문 해석 분석을 믿고 글을 쓴다. 지도 교수가 읽고 평가해주겠지.

글의 핵심 요지는 70 목자가 목자-왕 전승과 관련이 있으며, 그 기반 위에 동물묵시록 내 독특한 기능을 한다는 주장을 담으면 된다. 관련 근거와 자료는 확보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참고하는 신빙성 높은 두 자료가 70 목자를 천상적 존재라고 주장하니, 나로서는 그들의 주장을 인용하면 고충 없이 초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러나...
궁금하다.

동물묵시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상징이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진술한다. George W. E. Nickelsburg의 주석을 보면, 동물묵시록과 성경을 연결하여 아담부터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까지 설명하다가 갑자기 70 목자가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이 하늘이라고 진술한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갑자기 하늘로 장면이 바뀐다? 그것도 아무런 언급 없이?

Nickelsburg는 하나님께서 70 목자(89:59)와 '또 다른 자'(another one, 89:61)를 소환하는 장면은 하늘에서 발생하며, 두 집단 모두 천사라고 설명한다. 70 목자의 등장 이후 그들의 활동은 다시 성경과 연결하여 역사적 실존 인물의 행적이라고 기술한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가?

참고문헌.
George W. E. Nickelsburg, 1 Enoch: A Commentary on the Book of 1 Enoch, ed. Klaus Baltzer, Hermeneia—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N: Fortress, 2001), 38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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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의 70 목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이 70 목자의 정체는 여러 모로 흥미롭다. 목자로 부름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임무는 살상이다(89:60).

 

동물묵시록에서 이방 세력은 맹수로 표현되며, 양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을 침략한다. 분명 이방 세력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시며 사울 왕을 "뿔 달린 숫양"으로 부르신 이유가 바로 이방 세력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데 있다. 사울의 사후에 다윗이 왕이 된 이유 역시 전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방 통치자라도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을 위해 사용하시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70 목자가 그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동물묵시록에서 특정 이방 세력을 70 목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기존의 이방 세력과 달리 맹수로 묘사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이사야서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내 목자"(사 44:28)라고 부르신다. 또한 이사야는 고레스를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45:1)라고 설명한다.

 

많은 학자들이 바벨론 포로기를 중점으로 유대 민족의 신학적 혁명이 일어났다고 본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이방인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70 목자로 돌아가면, 이 용어 자체에 에녹1서의 독특한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본문 자체가 흥미로워서 글로 내 주장을 담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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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에서 하나님은 “양의 주인”(the Lord of the sheep)으로 지칭된다. 하나님이 양의 주인으로 처음 등장하는 계기는 양의 울부짖음에 대한 반응과 관련이 있다(89:16). 양의 주인으로서 그의 권위는 “지팡이”(the staff, 90:18)에서 나타난다. 지도자와 지팡이의 상관관계는 모세가 각 지파에서 지팡이를 하나씩 취하고 다시 지휘관들에게 돌려준 사건(민 17장)을 일례로 들 수 있다. 목축 사회에서 주인이 직접 목자로서 양무리를 보살피기도 하지만, 자신을 대신할 목자를 고용하기도 한다. 동물묵시록에서 하나님은 목자보다는 주인으로 등장한다. 그 특징이 “양의 주인”이란 칭호에서 잘 드러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는 실질적인 지도자는 모세이며, 그는 양으로 묘사된다(89:16–38). 이스라엘 왕국에서 첫 세 왕(사울, 다윗, 솔로몬)은 모두 숫양이었다. 이스라엘 멸망 이후 70 목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특정 기간에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자들이다(89:59). 동물묵시록에서는 하나님께 목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목자로 지칭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자보다는 주인의 역할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양의 주인으로서 목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사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 주인”과 같은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양으로 묘사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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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서 연구 주제를 찾을 때마다 자료를 많이 읽는다. 칼빈 시절에는 학기 중 약 25%에 해당하는 일정을 자료를 읽으면서 내 흥미를 자극하는 연구 주제를 찾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25%를 내 주장과 글의 구조를 만드는데 투자했다. 나머지 50%는 자료를 참조하면서 글을 쓰는데 보냈다.

 

자료 분석 단계에서는 무엇을 써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해 신경이 곤두선다. 구체적인 발상이 착상되기 시작하면, 논리적 장단점을 따져보고, 내 나름의 관점을 담은 글을 써본다. 단편적인 글로 내 관점이 정리되어 어느 정도 골격이 잡혔다 싶으면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에 공유한다. 차후 수정을 거치는데 핵심 요지는 변하지 않아서 재활용률이 높다. 짤막한 글이 하나둘씩 모이면서 여러 구상이 떠오르는데, 때로는 아주 중요한 핵심 논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여러 연구 주제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단계에서 연구 범위 설정을 잘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현재 구상한 글의 세부 사항과 앞으로 확장 가능한 연구 주제들이 보이기 때문에 연구 범위 설정에 유의하지 않으면 기한 내에 글을 완성하기 어렵다. 글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 나중에 검토하는 시간 등을 고려해서 최대한 주제 집약적인 글을 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내 경험에 의하면, 평가자로서 교수는 공정성을 위해 제출 기한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글의 수준은 그다음이다. 학생은 이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기한 내 최상의 글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중 범위 설정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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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인 에녹은 꿈을 통해 하늘의 계시를 전달받는다. 동물묵시록(1 Enoch 85–90) 에녹의 번째 꿈에 해당하며, 그는 자신이 내용을 아들 므두셀라에게 전한다 (85:1). 본문에서 에녹의 일생은 언급되지 않는다. 아담부터 셋의 계보(85:1–9) 노아 일대기의 시작(89:1) 사이에는 천사의 타락과 하늘의 심판(86:1–88:3) 다룬다. 에녹은 하늘의 심판에 관한 꿈에서 천사로부터 하늘로 들려 올려져 타락한 천사의 심판을 본다(87:2–88:3). 번째 심판의 대상은 타락한 천상적 존재이다(86:1–88:3). 타락한 천상적 존재는 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악의 기원으로 간주된다.

노아의 가족은 모두 황소이다(89:1). 가족 구성원 가운데 노아만 비밀을 전수받으며, 그에게 비밀을 전수한 존재는 천사 명이다(89:1). 노아는 비밀을 듣고 두려움에 전율을 느낀다(89:1). 이어서 그는 황소로 태어났으나 사람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89:1). 그는 자신을 위해 (편의상 앞으로 방주로 표기) 만들고 그의 가족이 안에 거한다(89:1). 홍수 심판은 지상적 존재를 대상으로 한다(89:2–8). 노아가 황소에서 사람이 되는 시점은 방주를 만들 당시로 보인다(cf. 89:1, 9).

에녹과 노아는 각각 천국의 계시와 비밀을 공유 받지만, 그들은 피심판자들에게 권면이나 회개를 선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에녹은 하늘의 계시를 자신의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줄 뿐이다. 노아는 천사가 전해준 비밀을 통해 방주를 만들어서 그의 가족은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지만, 비밀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는다. 홍수 심판의 대상은 지상적 존재이다.

천상적 존재를 위한 일차 심판과 지상적 존재를 위한 이차 심판은 피할 없는 하늘의 뜻이다. 심판에 대한 에녹의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녹은 천상적 존재를 향한 일차 심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상적 존재, 특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심판에는 고통을 느낀다. 가령 에녹은 환상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당하고 (89:54)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세력으로부터 침략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89:55),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한다(89:57).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신다(89:58). 하나님의 침묵은 심판의 필연성을 의미한다.

모세의 역할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유대 전통에서 모세는 선지자의 원형으로 간주된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에 관해서는 Wayne Meeks The Prophet-King: Moses Traditions and Johannine Christology (Leiden: Brill, 1967, 최근 복간본은 Eugene, OR: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7) 주요한 자료이다. 모세의 선지자 직분에 관해서는 예외적인 적용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에녹1서는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 듯하다. 양이 높은 바위의 꼭대기에 올라갔다가 다시 양떼로 돌아온다(89:29). 이후 줄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내산 사건과 흐름이 비슷하다. 동물묵시록에서 주요 인물의 일생을 간략하게 진술하는 특징을 고려한다면, 하나님의 시내산 현현은 꽤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89:29–35). 그러나 시내산 이야기에서 중요한 사건인 돌판 수령은 언급하지 않는다. 지점에서 Nickelsburg 양떼의 눈이 열리는 현상(89:28) 계시와 관련이 있고, 이와 반대로 눈멈(blindness) 배교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1 Enoch, 380–1). 주장에 관해서는 면밀한 관찰과 비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차후에 다룰 예정이다. 내가 주목하는 특징은 에녹 1서에 모세의 돌판 수령에 관한 진술이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독대한 사건을 모세의 선지자 직분의 명분으로 삼는 전통은 차치하더라도, 고대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관련된 돌판 수령을 생략한 이유를 고민해 필요가 있다. 부분에서 에녹 1서가 율법주의(legalism) 주목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어쩌면 심판의 필연성은 율법 준수 여부와 무관하다고 믿어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모세에 관해서 언급해야 또다른 특징은 그는 양으로 묘사되지만, 후에 사람이 된다는 진술이다. 여기서 천상적 존재와 구별해야 한다. 천상적 존재는 사람의 형상(heaven [beings] with the appearance of white men, 87:2) 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사람은 아니다.

엘리야(89:52) 대한 진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지자 전통을 중요시했던 고대 이스라엘의 통념과 달리 동물묵시록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선지자는 엘리야가 유일하다. 엘리야를 포함한 모든 선지자는 양으로 묘사되고, 그들의 사역은 실패로 끝난다(89:51–53). 다만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지만(89:51), 유일하게 엘리야는 건짐을 받고 하늘로 올림을 받는다(89:52). 엘리야에 관한 독특한 진술은 승천한 엘리야가 종말의 때에 하강한다는 기록이다(90:31). 하강하는 숫양의 정체에 관해서는 유다 마카비와 엘리야를 두고 논쟁이 있는데, 나는 엘리야가 적합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Nickelsburg 지적한대로, 유다 마카비는 승천했다는 기록이 없다(1 Enoch, 405). 천상적 존재가 아닌 이상 지상적 존재는 승천이 선행되어야 하강이 가능하다. 이때 엘리야는 숫양으로 묘사된다. 엘리야는 지상에서 양으로 묘사되었다가 하강할 때에는 숫양으로 그려진다. 또한 에녹과 같이 하강하는 인물이라면, 유다 마카비가 아닌 엘리야가 개연성이 크다. 여기서 에녹과 엘리야의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이에는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승천을 경험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상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승천이라는 경이로운 경험은 에녹 1서에서 에녹이 계시 수령자가 되는 근거이자, 엘리야가 최후의 날에 숫양으로 하강한다고 묘사되는 이유로 작용한다. 엘리야가 왕국 분열의 종말과 관련된 인물이라서 중요하게 서술되었다는 주장이 있음(Fröhlich, “Symbolical Language,” 630–631. Chae, Jesus as the Eschatological Davidic Shepherd, 99, n.19에서 재인용).

동물묵시록에서 모세의 돌판 수령과 엘리야를 포함한 선지자의 사역에 비중을 두지 않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종말의 때에 닥칠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과 예언을 준수한다고 해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는다. 실제 역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과 예언을 준수한 시기보다 배역한 기간이 길다. 이러한 믿음이 모세와 선지자에 관한 진술에 묻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리하자면, 에녹 1서는 율법과 예언의 중요성보다는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의 현실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녹 1서의 결정론적 관점은 ”(90:17) 존재에서 드러난다. 동물묵시록에서 심판이 실행될 책이 언급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에녹 1서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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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을 복사해서 인용해야 하는데, 복사 제한 기능에 걸려서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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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묵시록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의 인생을 동물의 특징에 빗대어 묘사한다. 연대기의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동물의 종류와 시대 구분 사이의 관련성에 주목하되, 특별히 황소(bull)와 숫양(ram)에 초점을 맞추었다.

 

황소와 숫양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다. 황소로 묘사된 대표적인 인물은 아담(85:3), 노아(89:1), 아브라함(89:10), 이삭(89:11)이다. 또한, 그들은 흰 황소라고 묘사된다. 흰색은 그들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갖는 정당성을 의미하는 듯하다. 황소로 묘사된 인물들이 활동한 시기는 천지창조부터 족장 시대이다. 가부장 중심으로 군락을 이루던 시대적 특징을 황소라는 동물로 표현한 듯하다.

 

숫양으로 묘사된 첫 인물은 야곱(89:12)이다. 흥미롭게도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은 흰 황소(89:11)인데, 정작 그는 흰 숫양이다(89:12). 야곱의 열두 아들은 열 두 마리의 양으로 묘사된다(89:12).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은 흰 숫양으로 일컬어지고, 나머지 형제들은 열한 마리 양으로 묘사된다(89:14). 여기서 숫양은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이 이집트에 거주하도록 해주며, 야곱의 후손들은 그 땅에서 번영한다 (89:14). 숫양의 출현은 족장 시대의 종말과 이스라엘 민족의 출발을 의미한다. 이후 숫양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지칭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울(89:42), 다윗(89:46), 솔로몬(89:48b), 유다 마카비(90:13, 16. cf. 90:9)가 있다. 미세하지만 각 인물에 대한 묘사에서 차이가 발견된다. 첫 번째로, 사울은 처음부터 숫양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다윗과 솔로몬은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 유다 마카비는 양(90:9)으로 등장한 이후 숫양(90:13, 16)으로 묘사된다. 숫양은 양의 성별을 구분하는 용도가 아니라 무리의 지도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 다른 차이점은 뿔에 대한 언급이다. 사울과 유다 마카비의 행적을 기록하면서 “뿔”의 존재를 부각한 반면, 다윗과 솔로몬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도 숫양이 뿔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문에서 뿔의 기능/존재를 언급하는 의도가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특이하게도,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었던 모세는 숫양이 아닌 양으로 묘사된다. 더 놀라운 건, 모세가 양에서 사람이 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노아는 황소에서 사람이 됨).

 

황소와 숫양은 지도력을 상징한다. 황소는 가부장 중심의 일족을 대표한다면, 숫양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지도력의 범위가 확대된다. 이러한 변화는 성경에서 양을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환유를 반영하려는 의도가 있다(Nickelsburg, 1 Enoch, 378).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새로운 출발점(창 35:10–11)이므로, 그를 숫양으로 묘사한 것은 타당하다.

 

덧붙여, 하나님의 등장과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한다(창 1:1). 하지만 동물묵시록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마리의 황소가 땅에서 나온다고 진술한다(85:3). 흥미롭게도 황소가 등장하는 본문에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숫양의 등장 이후, 정확히는 늑대로부터 억압당하는 양의 부르짖음으로 인해 “양의 주인”(the Lord of sheep)이 언급되기 시작한다(89:15).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칭호에서 둘 사이의 관계가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정의는 목자-왕 전승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관계는 종말론적 구원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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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1서에서 동물묵시록은 고대 이스라엘의 연대기를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동물묵시록'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본문은 두 가지 특징을 내포한다. 첫 번째는, 등장인물을 동물로 묘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짐승의 종류와 색상 등으로 유추할 수 있으며, 주요 인물의 경우 부연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 두 번째는, '묵시록'이란 장르의 특성상 천상적 존재가 등장한다. 천상적 존재 가운데 천사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편의상 사람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은 아니다. 타락한 천사는 짐승으로 변한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는 따로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있다. 에녹, 노아, 모세가 그들이다. 

에녹서에서 에녹은 계시 수령자이다. 그는 꿈과 환상을 통해 하늘의 비밀을 전달받았다. 또한, 에녹은 계시 전달자이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계시를 아들 므두셀라에게 가르쳐준다. 이러한 특별한 역할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는 창세기 5장 24절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서 에녹에 관한 언급은 극히 제한적이라 그런지, 에녹서에서도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언급은 한정되어 있다. 동물묵시록에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 대한 기록(85:3-9) 이후 계보에 대한 언급이 잠시 중단된다. 중간에 에녹이 자신의 계시 수령 체험을 기록하며 신적 심판의 사유(86-88장)을 말한다. 이후 노아가 등장하며(89:1) 다시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아담과 노아를 비교하는 기법인 동시에 에녹의 생애를 건너뛰는 효과가 있다. 면밀히 말하자면, 동물묵시록에서 에녹의 역할은 환상을 보는 관찰자이다.

노아는 홍수 심판의 때에 방주를 지어 구원을 경험한 인물이다(창 6-10장). 노아가 구원을 받은 이유는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는 기록이 대변해 준다. 동물묵시록에서 노아는 흰 황소로 등장하며 추후 사람으로 변한다(89:1). 사람으로 변하는 시점은 방주 사건 이후로 보인다 (89:9). 에녹서의 핵심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노아의 홍수를 다가올 심판을 위한 심상으로 사용한다. 에녹서는 ‘노아의 탄생'(The Birth of Noah, 106-107장)을 수록할 정도로 노아를 중요한 인물로 그린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모세가 갖는 위치는 남다르다. 그의 위상을 반영하듯이 동물묵시록에서 제일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인물이 바로 모세이다. 단순히 구절만 비교해도 노아(89:1-9)보다 모세(89:17-38)가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에녹서 전체에서는 노아의 비중이 더 크다. 모세는 양으로 태어나 사람이 된다(89:36, 38). 그가 변형하는 순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나의 입장은 성막과 연결하는 해석이다. 몇몇 학자는 본문이 변형과 성막을 연결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한다 (“And I saw in this vision, until that sheep became a man and built a house for the Lord of the sheep and made all the sheep stand in that house,” 89:36). 한편으로는 시내산 현현을 변형의 순간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James VanderKam and Dulcinea Boesenberg). 나는 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내가 생각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본문은 변형 이후 성막을 지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우선, 모세의 생애에서 성막 건축 이전의 광야 생활을 압축적으로 진술하면서 양에서 사람으로 변형된 순간으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89:36). 또한 모세의 광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And that sheep that had led them, that had become a man, was separated from them and fell asleep, and all the sheep searched for him and cried bitterly because of him,” 89:38). 모세의 생애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부분은 시내산 현현이다. 두 번째, 변형과 성막 사이의 상관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 솔로몬의 업적은 성전과 궁전 건설이다(89:50).  변형과 성막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면, 솔로몬은 사람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본문에 의하면 솔로몬은 조그만 양에서 숫양이 된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다(89:48b).

이처럼 동물묵시록에서 사람으로 그려지는 역사적 인물은 에녹, 노아, 모세가 전부이다. 이외에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는 등장인물은 70 목자들(89:59)이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존재이다(89:59). 70 목자를 타락한 천사와 연결하는 해석이 있는데, 나는 그러한 견해를 수용하지 않는다. 본문은 명백히 하나님이 70 목자를 소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타락한 천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동물묵시록에서 이방 세력은 온갖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여기에서는 이방 통치 기간의 정당성을 위해 ‘목자’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그들의 임무는 양 떼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다 (89:59–60). 70목자는 70년을 다스린다. 70년의 시대 구분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내가 볼 때 목자의 숫자나 통치 기간의 관련성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70’이라는 숫자의 상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70년이 이방 통치자의 지배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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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대로, 나는 동물묵시록을 목자-왕 전승과 연결 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동물묵시록의 특징을 분석하고, 뒤이어서 목자-왕 전승과 비교해야 한다. 현재 내가 골몰하고 있는 주제는 '큰 뿔 달린 숫양'이다. 지난 글에 나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1. 뿔 달린 숫양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사울과 유다 마카비 둘 뿐이다.
2. 큰 뿔 달린 숫양은 오로지 유다 마카비 이외에는 없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동물묵시록에서 숫양과 뿔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 앞서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큰 뿔 달린 숫양'이 과연 유다 마카비를 가리키는가?"이다. 다수의 견해에 쉽게 노출되는 경향으로 인해 나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소수의 견해는 어디든 존재한다. Menahem Kister와 Eyal Regav가 바로 다수의 견해에 맞서는 소수 진영에 속한 학자들이다.

 

결론부터 말해, 나는 '큰 뿔 달린 숫양'은 유다 마카비로 봐야 한다는 다수의 견해를 지지한다. 소수 견해가 갖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장점은 다수의 견해를 취해도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소수 견해를 따르면 쉽게 풀 수 없는 의문들이 제기된다.

 

이 질문과 관련해서 파생되는 연결고리들이 있고, 지도 교수와 대화를 나눠야 할 주제들이라 현 단계에서는 내 생각만 짧게 남겨두려고 한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는 세대라 실향민이나 전쟁 포로의 심정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또한 고대 유대인의 사상과 심상을 갖지 않은 현대인으로서 그들의 생각을 온전히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기간으로 여겨지는 셀류키드 제국의 치하에 놓인 유대인들이 어떤 생각을 품었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셀류키드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 수많은 유대인은 오랫동안 사악한 셀류키드 제국을 물리치고 다윗 왕국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독자적인 나라를 꿈꾸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유다 마카비가 등장한다. 제사장 가문 출신이지만 뛰어난 전술과 지도력으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유다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형제와 자녀들이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다. 끝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정화한다. 따라서 마카비 가문의 수장 유다 마카비는 그야말로 메시아이다. 헤스모니안 왕조에 대한 후대 평가는 분분할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 유다 마카비와 그의 가문에 거는 기대는 현 순간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을 앞둔 시점이라고 믿는 데까지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Joseph Klausner의 유다 마카비가 메시아로 인정 받지 못한 이유에 관한 연구는 흥미롭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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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목자-왕 전승과 몇몇 주제로 에녹 1서를 바라보고 있다. 내 생각을 정리하며 에녹 1서 영문판과 관련 자료를 참고하던 중, 나쁜 사례가 발견되어 공유해 본다.

 

학자는 자료 검증에 철저해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1차 문헌인 에녹 1서 영문판을 제대로 읽지 않고 성급하게 2차 문헌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뿔 달린 숫양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사울과 유다 마카비 둘 뿐이다.

2. 큰 뿔 달린 숫양은 오로지 유다 마카비 이외에는 없다.

 

이 두 가지가 중요한 이유는 동물묵시록에서 숫양과 뿔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저자의 학문적 성과는 인정받아야 마땅하지만, 이러한 실수를 지적해 주는 것 역시 후학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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