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들에게.


웨신 시절 조교 자격으로 연구소에서 공부하다 보니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서 "xxx파"(좌파, 우파 아님)라고 분류되었다. 당시에는 신경을 안 써서 그러려니 했는데, 세월이 지나갈 수록 내가 교수님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논문 지도 교수의 영향력은 남다르다 싶다.
 
영국 학교 인문학 박사 과정에서는 입학 후 바로 논문을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robationary Review는 학생이 박사 과정을 진행할 역량이 있는지 점검하는 과정인 동시에 논문 초기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개월 간 지도 교수와 교류하면서, 이전까지 경험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를 넘어서는 상호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수업이든 자율 연구(independent study)든 교수의 평가가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그 중요성은 박사 과정에도 적용되지만, 학생의 의견이 상당히 중요해진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지도 교수는 학생에게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 최대한 학생의 주장과 근거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반론이나 생각을 남긴다. 그에 대한 수용 여부는 전적으로 학생의 몫이다.
 
내 생각에 지도 교수와 의견 차이가 발생했을 때 해결 과정이 중요해 보인다.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견지해서 지도 교수와 심사 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도 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현격히 낮을 것이다. 보통 이 길을 선택할 경우 박사 학위를 마치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지도 교수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해도 한다. 안전한 길이지만,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을 갖지 않고, 지도 교수의 의견을 수용하는 수동적 태도는 좋은 평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자신과 지도 교수의 견해 차이를 인지하고, 자신 스스로 둘 사이의 간격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학생에게는 의견 차이만큼이나 긴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겠지만, 아마도 지도 교수는 학생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까 싶다.
 
영국 학교에서는 지도 교수를 조언자(advisor)라고 지칭한다. 학생은 연구자로 대우한다. 이전까지는 교수들의 수업을 이해하면서 희열을 느꼈다면, 지금은 내 연구를 가지고 지도 교수와 협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취감을 느낀다.
 
왜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분들이 지도 교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충성도를 보이는지 조금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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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9시간 30분만에 답장이 왔다. 이번 작업 기간 동안 짧아야 2~3일, 길게는 일주일 지나야 답장이 왔었다. 이번에는 수정 사항이 별로 없었는지 금방 답을 주셨다.
 
1차 수정본을 받고 약 15일 동안 이사야 44-45장의 고레스 예언을 고민하다보니, 지도 교수의 피드백을 다 반영하지 못했다. 내가 한 작업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틀을 조금 수정하고 문장을 추가했다. 다른 하나는 70 목자의 정체에 대한 내 견해를 바꾸었다.
 
결과는 좋다. 지도 교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피드백을 내 방식대로 잘 소화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분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면 "This is coming together! Good job working on it"이다.
 
이제 Probationary Review에 제출하기 위해 변경 내역 추적 기능으로 남겨진 수정 내역들을 다 지워야 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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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목자의 정체를 천사로 해석하는 대세적 흐름과 달리 나는 그들을 지상 세력과 연결해서 "70 목자는 열국의 통치 기간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했었다.
 
지도 교수는 내가 70 목자의 정체는 열국이라고 주장한다고 이해했다. 전반적으로 둘 사이에 의견 차이가 크지 않았는데, 70 목자의 정체에서 간격이 벌어졌다.
 
이사야 44-45장을 들여다 보면서 여러 발상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 견해를 바꿔야 할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 수정 작업하면서 지도 교수의 메모를 읽어보니, 그의 조언이 얼마나 적절한지 깨달으면서 동시에 나의 무지를 보게 된다.
 
이제 틀을 보완해서 지도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 이제라도 회심(?)한 제자를 보며 흐뭇해 하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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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글은 없다

성찰 2021. 11. 14. 23:15
1. 예상만큼 글이 써지지 않는다.
2. 구상과 글의 방향은 다르게 흘러간다.
3. 중요한 영감은 마감일 전에 떠오른다.
4. 새로운 아이디어를 글에 다 적용하지 못한다.
5. 결국 마감일에 쫒겨 제출한다.
 
더이상 글 쓸 일이 없을 때까지 무한반복할 루틴이 아닐까 싶다. 매번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보면 두 가지 정도가 있지 않을까.
 
1.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2. 차후 연구 주제가 생김
 
목표 기한 내에 박사 과정을 끝내려면, 좀더 각 잡고 집중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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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 입학 후 1년은 Probationary Review (PR)를 치른다. 이 절차에 대한 명칭은 학교마다 다르다. 지도 교수가 단독으로 심사하는 학교가 여럿 있는데, St Andrews에서는 위원회를 만들어 2명이 심사한다. 이 절차를 통과해야 2년차로 진급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혼란탓에 2020년 9월 이후 입학자들은 1년이 지나 심사를 받게 되었다. 내가 그 대상에 속한다. 올 해 입학자들은 이전처럼 정상적인 일정을 따르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2년차부터는 Annual Progress Reviews (APR)를 거쳐야 한다. 나는 며칠 전에 이와 관련된 이메일을 받았고, 학교 홈페이지에 양식을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심사 위원은 2명이고, 내 경우 School of Divinity 내 타 전공 교수진으로 구성되었다. 심사는 내년 5~6월에 있다.
 
영국 박사 과정은 지원자의 연구 제안서로 시작한다. 학교 지원 전에 연구 제안서로 잠재적인 지도 교수를 찾아야 하고, 합격 이후에는 그 제안서를 토대로 PR를 진행해야 한다. 지도 교수의 권면/지도에 따라 방향이나 주제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PR 이후에는 APR로 연구 진행 과정을 점검 받아야 한다.
 
영국 박사 과정은 지원자의 연구 제안서를 논문으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으로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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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내 목자"(44:28), "야웨의 기름부음 받은 자"(45:1)로 일컬어진다. 예언에 의하면 장차 고레스는 유대 포로 공동체가 다윗 계열의 후손이 성취할 업적으로 믿었던 그 일들을 성취하게 된다. 이러한 예언은 포로민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저항에 부딪힌다.

 

여기서 우리는 고레스는 전쟁을 통한 새로운 질서 확립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일시적인 임무를 맡은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레스의 등장은 다윗 계통의 왕에 대한 기대를 꺾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다윗 후손 중에 왕을 일으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해서라면 이방 왕 고레스에게 다윗과 같은 임무를 맡기실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이든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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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사야의 고레스 예언을 고민하고 있다. 애초에 박사 과정에서 이사야의 목자 은유를 별도로 다루려고 했는데, 에녹 1서의 동물묵시록에서 중요한 논증을 차지할 듯하여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비록 1년 동안 연구가 지체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고레스 예언을 통해 이사야와 동물묵시록의 목자 은유를 동시에 다루었으니 전체적으로는 진일보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레스 예언을 보면 그 자체로 의문스러운 지점이 한둘이 아니다. 정복자 이방 왕 고레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내 목자"이자 "야웨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일컬어진다. 고레스 예언은 다윗 언약을 기반으로 다윗 계열의 왕이 등장한다고 믿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신념에 어긋나며 그들로부터 반발을 받는다. 정복자의 신을 추앙했던 고대 근동 지역의 관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고레스는 마르둑을 칭송했으며, 야웨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가 이집트 정복 이후 그들의 신 레(Re)의 아들로 불리웠다는 기록은 있어도, 패전국의 신 야웨가 고레스를 세웠다는 예언은 상식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사야의 고레스 예언은 이전 관습을 뒤집는다. 그 근거는 야웨가 창조주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패전국의 신이 창조주라는 선언은 청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결국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있는 자" 그리고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라는 양면적 속성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들, 실질적으로 다윗 계열의 후손이 아니더라도 이방 왕을 통해 그같은 업적을 성취하실 수 있다는 전환적 사고를 가진 자들만이 이사야의 고레스 예언을 믿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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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근, "페르시아 시대 이집트의 우자호레스네트와 유다의 에스라와 느헤미야," 구약논단 20/4 (2014): 311-335.

https://www.kci.go.kr/kciportal/landing/article.kci?arti_id=ART001942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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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입문

추천도서 2021. 11. 3. 18:15

요청에 의해 신약 개론 강의 계획안을 간략히 작성해서 보내야 했고, 이번 금요일에 "신약 성경,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2 시간 동안 강의해야 해서 참고 자료로 구매했다.

신현우 교수님의 글은 언제나 그렇듯 쉽게 읽힌다. 쉽지 않은 내용을 핵심만 콕콕 집어서 쉽게 풀어 쓰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1부 신약학 입문"에서 장마다 첫 부분에 자리한 "주요 용어 해설"은 독자들이 전문 용어에서 마주할 문턱을 낮추고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다. "내용 요약"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글이 될 정도 핵심을 잘 압축하고 있다.

"3장 신약성경은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는가?"에는 시제와 상 등 최신 연구 결과를 실제 해석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문법 설명은 "심화학습을 위한 독서 목록"에 언급된 책이면 충분해 보인다.

신 교수님의 최대 강점은 "5장 신약선경의 본문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7장 공관복음서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8장 역사적 예수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본문 비평, 공관복음, 역사적 예수 연구까지 방법론을 집대성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다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나는 그 분에게 겨울 방학 강좌와 두 과목 강의를 통해 사본학을 배웠는데, 내가 지금까지 접해 본 바로는 이 분에게 비길 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력한 내공을 갖고 계시다. 다만 이 부분은 소화하기 쉽지 않아서 독자들이 얼마나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2부 신약신학 입문"은 공관복음, 특히 마가복음에서 도출해낸 신학들을 소개하고 있다. 2년 동안 학기마다 수업을 듣고, 목회학 석사 졸업 논문 지도를 받은 나로서는 매우 익숙하지만, 바울신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설지 궁금하다.

"3부 신약성경 각 권 입문"은 다 읽지 않고 틀과 구성으로 판단했음을 일러둔다. 내가 볼때 여기에서는 복음서 전문가의 장점과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은 개론서로서 탄탄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외 부분은 개관 수준에 그치고 있다.

본래 신약 개론은 30년 이상 강의 후 은퇴할 쯤에나 집대성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아니면 복음서, 바울서신 등으로 나누어 공동집필하는 책이다. 복음서 전문가로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면서, 본인의 예상보다 빠르게 집필을 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완성도 높은 책이라고 본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에 관심이 많으면서 신약 개론서를 찾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딱이겠다 싶다.

신약 입문 / 신현우 / 총회세계선교회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983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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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린더에서 고레스가 마르둑을 언급하는 내용 중 일부이다.

Marduk, king of the gods [x2]
Marduk, the great lord [x9]
Marduk, my lord [x3]

고레스가 진심으로 마르둑 신앙을 갖고 있었느냐는 별개로, 그가 자신의 업적을 마르둑과 연결하고 있고, 그가 마르둑을 자신의 신이자 국가의 신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면 이 실린더에는 야웨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의 신 야웨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이사야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사 45:3)

한글 번역은 마치 고레스가 나중에 자신의 업적이 야웨로부터 왔다고 알게 될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NIV를 보면 이런 짐작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I will give you the treasures of darkness, riches stored in secret places, so that you may know that I am the LORD, the God of Israel, who summons you by name. (NIV)

will과 may의 용법을 고려한다면, 고레스의 업적은 하나님의 의지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반면 고레스가 하나님을 알 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신앙과 상관없이 자신의 뜻을 실현하신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Cylinder at the British Museum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W_1880-0617-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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